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는 그 위치상 무시아, 리디아와 브루기아 등 여러 지방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로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도시는 건축하는 이는 형제애로 유명한 버가모 왕 아탈로스 2세라고 알려졌습니다. 사데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은 지진이 빈번한 지역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라는 표현은 구원의 언약을 성실하게 하신 주님을 나타내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메시야 왕국에서의 절대주권을 가지신 예수님을 드러냅내다. 이는 이사야 22:22의 엘리야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김은 힐기야의 아들로 셉나를 대신해서 정권을 받아 아무도 그의 허락이 없이는 왕 앞에 나갈 수 없는 절대 주권을 가지는 자로 예언됩니다. 바로 이 예언의 성취가 예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열어두신 구원의 문은 절대 닫을 자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의 문으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문을 닫고 여는 이 표현은 당시 빌라델비아에 있던 유대인의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쫓아내고 문을 받아 버렸던 것을 사건을 암시하며 회당의 문을 닫고 여는 것은 유대인이지만 다윗의 집(하나님 나라)의 집의 열쇠를 쥔 이는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분이 우리를 향해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두셨습니다. 그것을 닫을 자는 없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한데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여기서 작은 능력이란 윤리적, 영적 능력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 수나 교인들의 사회적 지위, 부, 영향력 등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빌라델피아 교회는 사회적 약자, 소수, 비주류였음에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약자였던 그들 앞에 결국은 강자처럼 군림했던 이들이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라는 말씀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약속하시는 데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을 환란과 시험의 때를 의미합니다. 이 구절을 흔히 성도는 대환란전에 휴거된다는 전환란설의 근거로 삼습니다만 사실 원문의 표현에 따르면 “면하게 하리니”은 “으로부터 지키리니”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환란을 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환란을 통과하는 중에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즉 10절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환란이 면제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빌라델비아 교회가 시험의 때에 그것을 헤쳐나가도록 주님께서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이것은 교회의 존재론적 목적과 이유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환란과 고난에 비껴서서 외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환란과 고난 속에서 함께 씨름하며 눈물과 피를 흘리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잡고 그 환란을 이겨내는 곳입니다. 여기에 십자가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게 해달라고 3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가 되길 원하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피하는 곳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곳입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십자가 없는 삶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칭찬을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주님은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주님은 당부하십니다. 에서는 장자의 권한을 잃었고 사울은 왕권을 다윗에게 빼앗겼고 가룟유다의 직분은 맛디아에게 넘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은혜의 자리를 잃었고 그 자리에 이방인들이 들어왔습니다. “선 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 것을 조심하라”는 고전10장의 말씀을 우리는 유념해야 합니다.

12절에는 교회를 향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리라”고 약속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솔로몬 성전의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을 연상시킵니다. 기둥은 건물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것이며 당시의 건축방식에서도 기둥은 가장 고난위의 기술이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유적을 보면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기둥입니다. 기둥의 둘레가 보통 기둥의 둘레와는 확연히 달라 마치 성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여기엔 지진이 많았던 이 지역의 특색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대피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앞 다퉈 뛰쳐나갔는데 이기는 자의 구원은 결코 이런 식의 불안한 구원이 아니라 지진이 와도 밖으로 대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뜻합니다. 기원후 17년 대지진에서 디베료 황제의 도움으로 도시가 재건되자 빌라델비아는 “네오카이자리아”로 개명했고 그 후 베스파샨 황제 때는 그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는 빌라델비아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소유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다트머스한인교회 김승용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