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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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발견한 글을 나눕니다. 한 가난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누가 사주셨던 그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10원씩 모았습니다. 다른 것을 먹고 싶어도 꾹 참으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아이스크림 값을 모아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샀습니다. 아이스크림 1 스쿱을 주문하고 그것을 손에 쥐고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감사해요!”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가게에 다른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아이스크림 3 스쿱을 주문했고 그것을 손에 쥐고 돌아갔습니다. 순간 이 여자아이의 고개가 떨궈졌습니다. 방금 전까진, 그렇게 행복했는데… 다정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웃으며 사라지는 아이의 뒷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쉽게 되는 것이 하나도 없지? 주님, 저는… 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교하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소녀의 마음은 그랬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소녀의 귀에 “모든 것이 은혜였소”라는 찬양의 소리가 들립니다. 속으로 ‘아니 뭐라도 이뤄져야 은혜죠? 도대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은혜에요?’라는 불평이 가득 찹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들고 가게를 나서는데 이상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가난해 보이는 한 꼬마 아이가 자기 손에 들린 이 작은 아이스크림을 보며 부러운 듯 보다가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돌아섭니다. 그 소년의 뒷모습을 보다가 소녀가 그 아이를 불러 세웁니다. 그리고 “이 아이스크림 줄까?”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행복하게 돌아서는 소년을 보며 소녀는 참 행복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 이렇게 일기를 남깁니다. “은혜는, 좋은 것을 받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오늘 내게 주신 10원도 은혜였고, 작은 내 아이스크림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은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늘 함께 하시며 가르쳐주시는 주님을 만난 것이 은혜다!”

2021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한 해의 시간동안 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아내느라 애 쓴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애쓰며 무엇인가를 이뤄가고 또 소망하고 목표로 한 것들을 이룬다는 것, 아니 그저 하루 하루의 숙제를 해결하며 생존해 내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죠. 그러나 그것이 결코 우리 혼자만의 성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걸어온 그 하루, 하루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고백할 것은 바로 그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신 은혜에 감사를 표하십시오. 은혜를 받았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십시오. 스스로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음을 잊지말라고 되내이십시오.

둘째로 은혜를 발견한 사람은 그 은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복받은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은혜를 받은 것은 그 은혜를 나누기 위한 축복의 통로로 세움 받은 것이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도 바로 그러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도 그래도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독점하고 누리는 존재라고 착각했고 그 은혜를 자신들 안에 가둬두기에 급급했습니다. 마치 물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못하는 사해처럼 결국 그들은 곪고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길가처럼 굳어지고 단단해진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은혜가 이방인들에게 흘러가고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는 유대인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은혜가 흘러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만일 그 은혜가 교회와 우리에게서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썩고 곪게될 것입니다. 은혜는 나누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망가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막고 있는 뚝을 허물어야 합니다. 죄가 쌓아 올린 내 자아와 세상의 염려가 만들어 낸 뚝을 허물어야 합니다. 바로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을 채우고 또 누군가를 향해 흘러감을 볼 때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지를 알게 되며 또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2022년에 주실 새로운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나갑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