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

인생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혼자 버려진 채 아등바등 애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보디발의 집에서 최선을 다했고 결국 주인의 인정을 받아 집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합니다. 요셉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라고 속삭이는 유혹에 “하나님이 보신다”라고 대답하고 유혹을 물리칩니다. 똑똑한 요셉은 아마 그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면 그녀로부터 해꼬지를 당할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앞에서 죄를 범할 수 없었습니다.

사울의 눈을 피해 새로운 왕을 세우기 이새를 찾아간 사무엘, 이새는 자신의 아들들을 사무엘 앞에 데리고 옵니다. 오직 한 명 막내 다윗만 빼고 말입니다. 그 중요한 자리에 다윗은 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이새의 눈엔 다윗은 아직 너무 어렸죠, 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한 다윗은 모두를 대신해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홀로 양떼를 지키는 다윗은 자신이 양떼를 지키듯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심을 기억하며 자신의 목자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결과 거룩을 지켜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의 선택에 기뻐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홀로 양을 지키는 가운데 자신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찬양을 하나님은 들으셨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다윗은 결코 그 선택의 순간에 그들이 택한 선택을 반길만한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여준 믿음의 행동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요셉은 염려했던 대로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더 떨어질 곳이 없어 보였던 자신의 처지에서 더 낮은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힙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그의 형들은 그를 여전히 무시하고 어린아이 대하듯(삼상17:28)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사울의 미움을 받아 광야에서 오랜 시간 도피생활을 해야하는 처지가 됩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계시는 조금 의외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사라의 여종이었던 하갈은 아브라함의 자식을 잉태함으로 교만해졌다가 사라에게 오히려 핍박을 받게 됩니다. 결국 사라를 피해 광야로 도망갔다가 그곳에서 하갈은 자신을 살펴보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살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순간을 보시며 우리의 깊은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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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순간 순간 주님께서 나의 선택에 보상해주시고 칭찬해주며 격려해주길 원합니다. 그러나 분명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거나 우리가 버림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침묵에는 우리의 믿음의 결단에 대한 기대와 그 결단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욥은 당대에 의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사단에게 당당히 소개하며 자랑하십니다. 그러자 사단은 냉소적으로 반응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한 것인가요? 저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복이 눈 앞에 당장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저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되는 것이기에 현실의 삶에서 그 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만이 아니라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모의 칭찬과 상을 바라는 마음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가장 큰 것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할 수 있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그 놀라운 선택의 자유에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 모든 선택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분의 선택의 이유는 결국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닮아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믿음의 삶을 고행이나, 불행을 지고 살아가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삶은 오히려 사랑함으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찬양하며 주님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지난 주 말씀의 삶 시간에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살펴보왔습니다. 그는 고난이 예정되어 있는 그 길을 많은 이들의 만류에도 기어이 걸어가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갑니다. 성령의 이끄심은 결코 우리를 노예로 삼아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택을 보여주시고 그 사랑을 닮아가게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간구하시며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오늘 하루의 모든 선택의 순간들을 채워가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그 사랑의 눈으로 살피시며 우리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