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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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학자의 말 중에 하나가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말입니다. 이 말로 인해 니체가 “무신론자”라고 오해되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철저한 유신론자입니다. “신은 없다”가 아니라 “죽었다”는 그의 선언에는 기독교를 바라보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져 있습니다. 니체는 서구국가들이 가진 ‘자유, 인권, 문화…’등 위대한 유산들의 뿌리가 기독교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유래된 이 유산들이 어느 순간 기독교의 가치관과 맞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를 대체할 새로운 윤리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그것이 일명 “노예의 도덕”이 아닌 “강자, 초인의 도덕”입니다. 그리고 예전의 도덕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서구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사상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갖고 있는 문제를 알 수 있는 열쇠입니다. 기독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하나님없이 작용되어질 때 아니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그 잣대를 움켜잡을 때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어그러지고 삐뚤어지는지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습니다.

성(SEX)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기독교의 가치관에서 출발한 것이 하나님이 죄라고 여기는 동성애마저 옳다고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약한 자를 돕고 병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윤리가 길거리 마약중독자들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무료로 마약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궤변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복음이 유대인과 비유대인에게 차별없이 작용하기에 각 민족의 문화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독교의 관용에서 출발한 것이 타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기독교의 구원론은 아집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기독교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시대를 이끌어간 이러한 윤리들이 더 이상 그 출처인 기독교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 윤리들이 이제는 기독교는 시대에 뒤떨어졌고, 너무 고리타분한 고대의 유물처럼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타종교와 문화에 관대하지 않다고 말하며 마치 이제는 퇴치해야 할 악습인양 바라봅니다.

“신은 죽었고 우리가 새로운 신이다”고 주장하던 니체의 사상을 따르던 지금 이 시대에 마주한 현실입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태 속에서 유독 “교회”가 이슈가 된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아니면 지금 이 시대의 윤리와 잣대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기독교를 향한 이 세상의 필연적인 공격이었을까요? 사단은 예전처럼 복음을 막기 위해 순교자를 만들기보단 그저 기독교가 시대에 뒤떨어진 유행 지난 옷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겠지요.

마치 이러한 모습은 ‘가루 서말 속에 누룩’처럼 작지만 반죽을 부풀게 만드는 ‘기독교의 생명력’이, 가루 서말이 ‘절대 다수’임을 내세워 누룩의 생명력을 눌러 반죽이 부풀어 오르지 않도록 만들려고 하는 몸부림처럼 보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일상은 “뉴노멀”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뉴노멀”에 맞는 새로운 윤리와 사회시스템 그리고 가치관이 요구되어 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쩌면 기독교는 더 불편하고 언짢은 대접을 받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해 두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눅들지 말고 지금 이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것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거스르며 하나님나라의 가치관과 진리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세상의 주인행세를 하는 “인본주의”에서 다시 “신본주의” 우리를 돌이키기 위해선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참 사람이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그 중심에 모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진정한 “인본주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신본주의”에서 완성됩니다.

신은 죽었다고 여기는 이 시대에 “God’s not Dead. He’s surely alive.”라고 고백하며 지금도 우리 안에서 살아서 사자처럼 포효하시는 하나님에게 돌아갑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우리가 믿어야 할지, 무엇이 우리의 잣대인지에 대해서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시기입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