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하는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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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는 두 진영의 거대한 싸움을 보여줍니다. 애굽과 바로로 대변되는 그룹과 모세와 하나님으로 대변되는 그룹입니다.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과 바로가 의지하는 것들을 완전하게 무너뜨리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10가지의 재앙이 거듭될수록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완악함의 끝은 홍해 앞에 가로막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칼을 들고 좇아 나오는 것에서 절정을 이릅니다. 그리고 그 완악함의 끝은 홍해에서 수장되는 것으로 마무립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완벽한 승리입니다. 그런데 이 두 진영의 싸움의 원인이었던 이스라엘은 어떤가요? 그들은 바로의 박해 아래 고생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습니다. 그 부르짖음의 응답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로 인해 그들의 노역이 더 가중됨을 보고 오히려 원망합니다. 10가지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이뤄짐을 보았고 애굽에서 나올 때는 너무 좋았지만 막상 홍해를 만나자 그들은 모세를 향해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서 죽게 하는가라고 원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애굽과 직접 싸우시며 홍해를 갈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십니다. 이쯤되면 그들에게서 불평과 원망이란 사라져야 마땅해 보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목이 말라 헤메던 중에 쓴물이 나는 마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불평은 다시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후의 광야의 길에서도 그들의 불평과 원망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들은 감사와 불평을 이어서 쏟아냅니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 그들은 마치 전혀 딴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마치 한 샘물이 쓴물과 단물을 같이 쏟아내는 것처럼 이것은 이상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불평과 원망이 질병이라는 생각을 해 보셨나요? 우리는 흔히 우리의 불평과 원망이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고 그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런가요? 그런데 돌아보면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모두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지는 않습니다. 또 같은 상황에 대해서 어떤 이는 감사를 표하는 반면 어떤 이는 불평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니 불평과 원망은 상황과 형편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하기 보단 그 상황과 형편을 받아들이는 태도일 것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좋지 못하면 우리는 같은 상황 속에서도 불평과 원망을 쏟아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노예로 지내면서 그들 안에 노예근성이 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성경은 우리가 죄의 노예로 지내면서 죄악에 물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이 불평과 원망의 근원입니다. 그러기에 마라의 쓴물을 고치기 위해 나무를 던져 넣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고침에는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가 심어진 사람은 상황과 형편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그들은 결코 상황과 형편으로 좌절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의지하여 승리하고 감사하며 이미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감당 못할 은혜로 인해 만족하며 감사합니다. 십자가가 상황과 형편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의 가치가 비교 불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이것을 “이미 그리고 아직” 이라는 단어로 설명했습니다. 이미 가장 좋은 것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부어졌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그 어떤 것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최고의 것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지만 그 하나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누리는 그 어떤 것도 그 언제가 우리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그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루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형편은 결코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지금 우리의 상황은 결코 우리가 받게 될 그 상급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붙드는 자는 그러기에 환란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가지며 근심 중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고난 중에서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쓴 물에 십자가를 던집시다. 쓴 우리의 마음이 단 물로 바뀌도록. 우리의 삶의 중심에 십자가를 세웁시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붑잡고 상황과 형편을 뛰어넘으며 살아갑시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