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동기

다윗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든다는 것이 그의 재능이나 열정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다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일을 조금 더 열심히 하면 혹은 내가 조금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 마음에 들 거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우리 사이의 갭을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의 최선과 최고가 하나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아이들이 주는 선물이 여러분의 마음에 흡족하게 들었던 이유는 그 선물의 퀄리티나 가치가 놓아서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 선물을 준비하던 아이들의 그 마음이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서 하나님 눈에 보시기 좋을 정도로 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우리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 피조물인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룩한 그 어떤 것도 그 분의 능력 앞에서 그 빛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스럽게 보십니다. 그 이유는 그 안에 담겨진 우리의 동기를 아름답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란 평을 받은 것은 그의 삶이 이룩한 성과나 그의 성품이나 재능이 아니라 다윗의 삶을 움직인 그의 삶의 원동력 즉 그 마음의 동기입니다.

사울을 대신 할 왕을 세우기 위해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이새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새의 장남 엘리압을 보자 첫눈에 엘리압이야말로 기름부음을 받을 자라고 여깁니다. 그의 외모가 왕이 될만큼 준수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당부하십니다.

사무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에겐 우리의 중심을 속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중심을 숨기고 때때로 상대방을 영악하게 이용하며 동행하는 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 분에게 우리는 마음의 동기를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속이듯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고 여깁니다. 아니 그렇게 착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속이려고 드는 행위를 “위선”이라고 하나님은 평가하시고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여러분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 중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 만한 것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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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와 예수님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나귀를 탄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자신들의 겉옷을 깔고 호산나를 외치며 따르던 군중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동기는 다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군중들은 전혀 다른 위치에서 서로를 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며, 제자들은 배반과 낙심으로 군중들은 십자가를 외치는 폭도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런데 그 동행에서 우리가 진짜 원하는 동기가 무엇인가요? 왜 하나님과 동해하고 싶은가요? 혹시 하나님과의 동행의 목적이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링컨이 이끄는 북군은 전쟁에서 큰 어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도자들이 모인 연회장에서 한 교회 지도자가 링컨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북군의 편에 서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주시길 모든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있으니 걱정하시 마십시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링컨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북군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기만 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동기를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채웁시다. 이곳 캐나다에서 왜 사냐고 물으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오늘 하루를 시작할 때 ‘하나님 오늘 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루를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하루를 마칠 때에는 ‘하나님, 오늘 제 하루가 주님의 기쁨이 되셨나요?’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주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 가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고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의 삶은 주님의 인정을 받는 삶이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거룩한 믿음의 행진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중심, 동기들로 차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울왕처럼 결국은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