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빌립보서는 옥중에 갇힌 사도바울이 자신을 위로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오히려 더 큰 기쁨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섬김과 하나됨이 있기를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예루살렘에서의 1주일, 특별히 십자가 상의고난에 대해서 집중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분의 삶은 시작부터가 고난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난은 바로 자기 스스로 낮아지셔서 사람과 같이 되심으로 하나님이 스스로를 낮추심일 것입니다. 시공간의 제약 가운데 육신의 제한에 갇힌 채, 놀라우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베들레헴 마굿간 구유에 뉘이신 작은 아기는 바로 하나님의 겸손과 희생과 바로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낮아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인자가 오신 목적은 섬김이라고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섬김은 결코 강압 속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섬김이 굴종, 혹은 억압이 되지 않기 위해선 자발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은 바로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성도들의 삶 가운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의 아니라 서로를 돌아보는 삶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즉 섬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섬김을 위해선 우선 이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 분은 억지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강요에 못 이겨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결코 모든 것을 빼앗겨 어쩔 수 없이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스스로 낮아지셨고 복종하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바로 스스로 낮아지심입니다.

우리는 참 억지로 섬길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마지못해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자발적으로 하기 보다는 지위와 체면에 혹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하는 시늉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물론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는 섬김에는 늘 문제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문제 중 첫째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만일 섬김을 받은 대상이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우리는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취급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대신해서 배상을 해 주셔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보상이 없으면 이내 섬김을 포기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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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기쁨이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억지로 하는 섬김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섬김은 숙제와 같은 것이고 의무감에서 나오는 행동일 뿐입니다.

셋째는 감사함이 없습니다. 기쁨 없이 하는 섬김은 내게 아무런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섬김이 비참하게 여겨지고 섬김을 받는 자의 기쁨에 함께 기뻐하기 보다는 질투와 불평만이 쏟아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마음을 품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그 대답은 무척 간결합니다. 바로 사랑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섬김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우리는 주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또한 지극히 작은 자, 강도만난 이와 같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함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겸손하게 배려하게 합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 중엔 자신을 은 30에 팔아 넘길 가룟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3:1에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가지 사랑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류하는 베드로를 제지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섬김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은 끝까지 섬기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이시기에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신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