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함과 두려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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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다양한 속도가 있고 놀랍게도 서로 상대적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빛의 속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절대적인 빛의 속도에 따라 서로의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주의 질서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제각기 일종의 제한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법이 제한선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범죄자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법을 잘 지키며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에겐 자존심이, 어떤 이에게 자녀가, 어떤 이에게 양심이 그 제한선이 되어 그 기준을 따라 살아가게 합니다. 심지어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한이 있기에 우리는 분명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에 제한선을 잘 설정해야 합니다. 잘못된 제한선을 두면 제한이 없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제한선이 상대적이어서 때로는 서로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치 빛의 속도와 같은 절대적인 제한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잠언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입니다. 지식이 앎의 총합이라면 지혜는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잣대입니다. 즉 우리 삶의 제한선을 설정하는 것을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한선의 기준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함”입니다. 경외함이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 원어에는 yir’ah (יִרְאָה), 헬라어에는 phoboumenois (φοβουμένοις) 라고 기록되어 있는 이 말은 한국어로는 “두려움”으로 종종 번역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무척이나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 앞에선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이 사실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행위와 마음의 생각 하나 알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경외함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아무도 모를거야! 라는 생각, 혹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쉽게 범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비밀이라는 것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정의의 심판을 하시는 의로운 재판장입니다. 그런데 경외함에는 두려움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외함에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존경이 담겨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결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율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경외함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즐거워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무지막지한 폭군으로 우리 앞에 존재하길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아버지(잃어버린 탕자의 아버지)로 존재하십니다. 그 분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결핍과 문제를 채움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 앞에 나아감으로 그들은 바리새인들 보다 더 복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하는 자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외함은 하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 속에 주인공이 바위 얼굴을 보고 자라며 그 모습을 닮아가는 것처럼 경외함은 하나님의 그 놀라우심을 닮아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결국 자신의 삶을 통해 여호와를 경외함을 드러냅니다. 지혜의 서신인 잠언에서 지혜를 살아있는 인격체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은 지혜는 결국 삶속에서 인격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큰 바위 얼굴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내 삶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를 경건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 우리 삶의 절대적인 제한선입니다. 오늘의 내 삶의 모습을 이 제한선에 비추어 봅시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오늘을 살아가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내 연약한 모습을 내어놓고 그 분의 은혜로 채움을 받고 있으신가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분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계십니까? 이 제한선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