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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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세 번째 책인 레위기는 처음 성경을 읽는 자들에게 무척이나 낯설고 어려움을 줍니다. 익숙하지 않은 제사의 방식(제물로 쓰이는 동물을 어떻게 죽이고 어떤 처리를 하고 어떻게 태우는지….)와 지금의 가치관과 사뭇 다른 율례는 마치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예민한 전자기기의 사용설명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무언가 자세하게 설명하는 듯한데 지금 현실엔 그리 유용해 보이지 않는 나와 상관없는 저 먼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인해 차마 버리진 못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방치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레위기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통해 하나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받은 그들 자신들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레위기는 가장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레위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나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실제적이며 내 삶의 중심입니다.

이 예배에 대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자세한 설명을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예배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드리는 자가 중심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그러기에 받으시는 분이 원하시는 대로 아주 작은 것부터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예배의 근원이 흔들립니다. 주의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가르쳐 준 제사의 형식을 지금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써 온전하고 완전하게 드려짐으로 이제는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구약의 제사를 통해 원하셨던 하나님께 예배드림의 근본적인 모습들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유념해야 합니다.

이 예배드림의 가장 근본이 바로 하나님 중심입니다. 많은 크리스찬이 ‘왜 예배를 드리는가?’라는 질문에 은혜를 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완전한 답이 아닙니다. 예배드림은 드리는 자가 은혜를 받든 그렇지 못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 받는 이가 원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의 첫 번째가 번제입니다. 제물을 온전히 태워 그 연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나의 전부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드리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온전히 내어드림이 예배입니다.

두 번째 제사의 모습은 소제입니다. 곡식의 가루를 태우는 번제의 일종입니다. 곡식을 곱게 갈아 그 가루를 태웁니다. 어차피 태울 것인데 왜 굳이 고운 가루일까요? 여기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나의 고집과 생각을 하나님 앞에 깨뜨리고 갈아 고운가루처럼 드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 고운 가루에 언약의 소금을 뿌립니다. 즉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겸손하게 깨드리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 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내 마음에 두고 예배 가운데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자가 깨어지고 변하는 것이지 예배 받는 자를 깨뜨리고 변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에 나왔습니다. 나의 에배 드림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 한 것인지 우리는 깊이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마당만 밟고 돌아간다”는 이사야서 1장의 하나님의 탄식만 되풀이 될 뿐입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